무상급식 매트릭스

2015.04.21 05:50

conts2 조회 수:2269



새누리당이 ‘무상’ 코드를 이용해 여론을 끌어당기려 하는 반면, 야권은 대체로 전략적 고민 없이 끌려가는 모습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고위원회의나 공식 브리핑에서도 무상급식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 당의 전신인 민주당은 2012년 대선 당시 이른바 ‘3무1반’ 공약을 내걸었다.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3무)와 반값 등록금(1반)을 합친 용어다. 3무1반 공약이 대선 국면을 뒤흔들었다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맞춤형 복지’를 내세웠는데, 이는 듣는 이에게 자격 검증을 보장하는 효과를 낸다.


정치인의 체급과 위치에 따라서도 무상급식 논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한국갤럽은 매달 둘째 주 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공개한다. 첫째 주 조사에서 주관식 질문으로 ‘예선전’을 치르고, 여야 상위 네 명씩을 추려 ‘본선’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야권의 ‘빅 4’는 지난해 8월 첫 조사 이후로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문재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4월10일자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흥미로운 이변이 일어났다. 예선전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제치고 이재명 성남시장이 본선에 진입했다. 야권 후보군에 변화가 온 것도, 기초단체장이 대선주자 후보군에 들어온 것도 처음이다. 새누리당 쪽에서는 홍준표 지사가 두 달 만에 다시 예선을 통과했다. 지난달인 3월에 홍 지사를 제쳤던 인물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홍준표, 오세훈, 이재명은 다 무상 논쟁의 주역들이다. 홍 지사는 경남도에서 포문을 열었다. 오 전 시장은 “무상급식은 최악의 정책이다”라며 참전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무상 산후조리원에 이어 무상 교복 정책을 검토하는 등 이른바 ‘무상 시리즈’를 쏟아내 홍 지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셋은 공통점이 있다. 몸담은 진영에서 적통이라기보다는 변방에 속하고, 미래의 지도자 후보로 거론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유력하지는 않다. 이런 위치의 정치인은 우선 ‘진영의 대표선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명 시장은 기초단체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전국 인지도를 확보했다. 홍 지사와 오 전 시장은 선명한 무상 반대 노선을 내세워 보수의 아이콘 자리를 노린다.


‘끌려오거나 혹은 이탈하거나’ 중도층의 두 얼굴


‘적통’을 이었거나 전국 단위 선거에 눈높이를 맞추는 정치인의 궤적은 이들과는 달라진다. 4월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증세’와 ‘공정한 시장경제’와 ‘재벌 개혁’을 연이어 거론했다. 대체로 진보의 관심사로 간주되던 주제다. 다음 날인 4월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경제’를 99번이나 언급하며 보수 의제에 침투하려고 시도했다. 중도 표를 끌어와야 총선과 대선을 이길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중도 표를 끌어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를 들면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 이슈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중도 표를 가져오는 길일까. <표 1>을 보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진보·보수 개념도다. 이 그림에서 진보와 보수는 일직선상의 위치로 표시된다. 중도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사이에 있는 이들이다. 이 모형에서 중도는 비합리적이고, 정치적 선호가 모호하다고 간주된다. 이 <표 1>의 세계에서는 중도 표를 잡겠다고 가운데로 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의제를 강하게 내세워서 중도를 끌어오는 동원 전략이 좋을 수 있다. ‘무상’ 찬반의 양쪽 극을 달리는 ‘홍준표-이재명 모델’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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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허버트 키트셸트(Herbert Kitschelt) 등 일군의 정치학자들은 이런 일직선 모형과는 다른 설명을 내놓는다.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표 2>가 된다. 가로축은 경제 이슈에 대한 태도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시장 자유를, 왼쪽으로 갈수록 국가 개입을 선호한다. 세로축은 사회문화 이슈에 대한 태도다. 위로 갈수록 개인 자유를, 아래로 갈수록 권위주의 취향을 나타낸다. 두 축에 대한 태도는 같이 갈 수도 있고 갈릴 수도 있다.

전통적인 진보의 자리는 왼쪽 위(경제 개입주의와 사회문화 자유주의)다. 전통적 보수의 자리는 오른쪽 아래(경제 자유주의와 사회문화 권위주의)이고, 왼쪽 아래(경제 개입주의와 사회문화 권위주의)도 보수의 영토에 가깝다. 문제는 두 진영 모두가 제대로 대변해주지 않는 오른쪽 위(경제 자유주의와 사회문화 자유주의)다.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인 정한울 박사(정치학)는 “이런 모형에서 중도층은 전통적인 의미의 ‘동원’ 대상인 중도와는 다르다. 기존 정당이 정체성을 강화하면 이들은 끌려가는 게 아니라 이탈한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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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의 핵심은 유권자 모형을 하나의 진보·보수 축이 아니라 둘 이상의 축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이는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복지 논쟁을 중심으로 변형해본 도식이 <표 3>이다. 정통 진보는 ‘복지 확대-보편 복지’ 조합을 선호한다. 정통 보수는 ‘복지 축소-선별 복지’ 조합을 선호한다. 그런데 복지 확대를 원하면서도 선별 복지를 선호하는, 그러니까 전면 무상에 반대하고 수혜자의 자격 검증을 원하는 여론이 적지 않게 있다.

홍준표-이재명 모델은 각자 속한 진영을 정통파 쪽으로 더 끌어당긴다. <표 1>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중도 표를 끌고 오는 효과를 내지만, <표 3>의 세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서는 ‘격전지’를 버려두는 결과가 된다. 이 세계에서 동원 전략은 먹히지 않는다. <표 2>의 ‘문재인-유승민 모델’은 정반대다. ‘격전지’의 유권자를 상대로 동원이 아니라 침투를 시도한다. 둘 중 어느 전략과 노선이 옳은지를 따지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두 모델 모두 각자의 처지에서 합리적인 대목이 있다. 단지 정통성과 체급과 목표의 차이 때문에, 무엇이 합리적 선택인지가 서로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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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0

[출처 및 전문 :   시사인 http://is.gd/BNoIt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