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의 위기와 종교의 위상

2016.05.1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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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위기와 종교의 위상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

시민사회는 시민(市民, citizen)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사회이다. 따라서 시민을 어떻게 규정짓느냐에 따라 시민사회에 대한 정의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21세기 초반 한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민 개념은 주로 서구적인 배경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공동체인 폴리스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에서 출발해서, 산업혁명의 과정을 거치며 중세 교회공동체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부르주아로서의 시민에서 일정한 완성을 이룬 서구적 시민 개념을 광복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시민은 그런 수입 개념으로서의 역사와 함께 19세기 동학혁명과 20세기 초반 일제에 항거한 3.1운동, 20세기 중반 이후의 4.19학생운동과 광주민주화 항쟁, 6월 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주체적인 수용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정착한 것이기도 하다. 그 시민이 주인공인 시민사회는 특히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부도덕하고 폭압적인 정권과의 대립각을 통해  저항적 성격의 것으로 자리잡았다. 그 시민사회는 민주화 투쟁을 거쳐 등장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정권을 이끌어가는 주체의 일부로 포함되는 전환 과정을 거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민사회는 저항성을 중심에 두고 비판과 대안 제시를 목표로 삼는 운동 중심의 공동체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시민사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시민 없는 시민사회, 대안 없이 비판만 일삼는 시민단체 등등의 표현이 그러한 위기를 상징하는 것들이고, 현재 상황 속에서도 이런 징후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민주화 투쟁이라는 운동을 중심에 두고 사회 곳곳에 질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불의(不義)와 맞서온 저항적 시민사회가 이제 그 시대적 유효성을 상실한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 전반에 시민성으로 상징되는 건강한 정치경제적 도덕성이 전반적으로 몰락해가고 있는 징후와의 깊은 연관성 때문일까?



21세기 초반 한국 시민사회의 위기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 시민사회의 위기에 관한 분석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될 수 있다. 사회현상에 주목하면서 그 현상의 배후에 숨어있는 위기의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위기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 구성원인 우리 자신의 삶을 분석함으로써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시민사회의 위기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확실한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20세기 이후 사회과학의 흐름을 주도해온 두 이론적 배경, 즉 사회구조에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와 개인의 심리에 주목하는 프로이드주의라는 두 시각 모두를 중시해야 하는 것은 물론 하나의 체계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니클라스 루만 같은 관점도 포괄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어느 정도의 현실 적합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사회현상에 주목해보자.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들만 열거해 본다면, 급속히 확산되는 사회연결망서비스(SNS)로 인한 인간관계 양상의 변화, 1인가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소비문화의 급속한 변화, ‘헬조선(hell朝鮮)’으로 상징되는 불평등 구조의 정착과 그로 인한 절망의 일상화, 북한 핵을 중심으로 하는 힘의 대결 양상 속에서 심화되는 불안과 그에 대한 불감증의 확산 등을 꼽을 수 있다. 더 이상 ‘풍요 속 빈곤’이나 ‘군중 속 고독’ 같은 엷은 사회학적 개념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중층적 복합성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현상 전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드러내고 있는 다양한 징후들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구조를 지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내면의 성찰을 통해 분석해낼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려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성찰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임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 어려움을 직시할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하면서도 친근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시민사회에 관한 분석은 그 구성원인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내면적 성찰과 함께 쏟아지고 있는 관련 자료들의 유기적 활용이 더해져야만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자칫 허망한 통계적 진리에 휘둘리거나 각 개인의 편견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문제에 유념하면서 우리 시민사회를 분석해본다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위기 징후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 징후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요인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위기 분석 또한 일정한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우리 시민사회의 위기는 먼저 급속한 개인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개인화는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한 독일 사회철학자 울리히 벡이 정착시킨 개념이지만, 현재는 주로 각 개인의 소비성향에 맞춘 마케팅 전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기성과 탈관계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전제로 해서 성립되는 개념이다. 즉 인간은 고립된 상황 속에서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자라는 인간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개인화가 특히 우리 사회에 급속하게 정정착하게 되는 계기는 20세기 후반 구제금융사태이고,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되어 버렸다.


이기성과 고립성을 배경으로 삼는 개인화는 자연스럽게 그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이자 대상인 물질, 즉 돈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도덕적으로까지 정당화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것은 물신주의(物神主義)의 정착과 정신적인 영역의 황폐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시민들 사이의 유기적인 연대를 필수 구성요소로 하는 시민사회는 껍데기만 남긴 채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구사회나 일본과 중국 같은 인근 국가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우리의 경우 그 속도성으로 인해 적응하기 힘들 정도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한 가지 더해져야 하는 우리 시민사회 위기의 원인은 분단구조와 그로 인한 합리성의 위기이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분단구조를 정권 획득과 유지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 결과 분단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불만과 위기를 흡수해버리는 블랙홀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반도 분단구조는 객관적인 직시를 전제로 하는 극복의 대상이지만, 현재는 시민사회를 이루는 기반인 합리성에 근거한 토론과 소통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면서 시민사회 자체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분단구조는 개인화와 부적절하게 연결되면서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감, 미국에 대한 문화식민지적 의존의 심화를 불러오는 원천이 되고 있기도 하다. 


시민사회의 위기 속에서 우리 종교의 위상

시민사회와 종교의 관계는 막스 베버의 종교사회학 이후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근대 시민사회의 출범과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상징되는 종교의 깊은 연관성에 주목했던 그의 시각은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해 유교문화에 대한 주목으로 이어지다가 이제는 큰 관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종교와 시민사회의 관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시민사회가 처한 위기의 분석과 대안 모색의 과정에서 종교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 위기 징후의 핵심이 정신성과 관계성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출처 및 전문보기: 신대승 e-매거진. http://webzine.newbuddha.org/article/7>